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누운채로 기지개를 켜고는 멀뚱멀뚱 '오늘은 뭐 할까' 생각하며 누워있곤 했는데,
그 시간이 요즘은 가장 행복한 듯.
다른 시간들이 별로라는 뜻은 아니고, 그냥 한국에서 일상 생활할 땐 절대 못 느껴보는 기분이라 ㅎㅎ
매일같이 베네치아 본섬에 들어가느라 탔던 2번 버스. 오늘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탑승.
토요일이라 그런지 동네에 장이 선 모양이다.
외국에 나와있으니 날짜 개념이 싹 사라졌는데 저거 때문에 주말이 됐다는 걸 알게 됐음 ㅎㅎ
전날 샀던 하루 통합권의 유효 시간이 얼마 안남았을 때 부랴부랴 베네치아 본섬에서 수상 버스를 한 번 더 탔다.
※ 지난 포스팅에서 얘길 안했는데, 하루 통합권은 티켓을 맨 처음 사용한 시간 기준으로 24시간동안 쓸 수 있다.
잘만 활용하면 나 처럼 제대로 뽕 뺄 수 있음 ㅋ
베네치아 4일차. 이젠 바포레토가 아무렇지도 않아.
아니 오히려 ㅋ 처음 왔을 땐 그냥 걸으면 되지 뭘 저런 수상 버스에 의존하나 했는데, 며칠 있어보니 이것만 고집하게 되더라 ㅋ
바포레토 짱 +_+
일기예보에 의하면 원래 비가 내렸어야 하는 날인데 어째 비가 오지 않더라. 나야 다행이었지만.
그래도 안심할 수 없었던 것은 역시 하늘에 비구름이 얕게 깔려있긴 했다는 거.
그래도 이렇게 우산 쓰지 않고 베네치아의 마지막 모습을 눈에 담을 수 있어 다행이었어.
수상 버스를 타고 운하를 건너고 있노라면 이렇게 건물의 디테일을 보는 재미가 굉장히 쏠쏠하다.
그냥 걸어다녔으면 잘 못 봤을 건물의 윗 부분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나름의 묘미랄까.
본섬 안에도 장이 들어섰다. 주말임을 알게 해주는 재미있는 소경과 조우.
딱히 더 할 건 없지만,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좋구나.
베네치아의 힘이겠지. 참 대단하다.
어찌나 평화로운지.
저긴 화려한 장식이 더해진 걸 보니 좀 대단한 사람이 살았던 건물인듯.
그런 상상을 혼자 해보는 것 역시 재미라면 재미.
지난 포스팅부터 꾸준히 내 카메라에 담기고 있는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가까이서 보니 더욱 멋지다.
곤돌라를 베네치아 본섬 안의 작은 운하들 사이에서 봤을 땐 '그저 고요한 강물 위를 다닌다'고만 생각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그 마저도 바닷물이니까 베네치아의 곤돌라는 늘 바다 위를 돌아다니는 거였어....
멋지다 곤돌리에 정말.
한참을 수상 버스 위에서 보내고 나니 어느 덧 눈 앞에 다가 온 산 마르코 광장의 종탑 전망대가 나타났다.
오늘이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날이니, 심지어 예정됐던 비도 오지 않으니 오늘은 줄이 길든 말든 무조건 올라가 봐야겠다는 생각.
입장!
줄이 그래도 좀 있던 시간이라 한 30분 정도 기다린 듯.
티켓을 끊었다.
티켓 참 소박하게 생겼는데 이게 무려 8유로임.
감사하게도 엘레베이터 타고 올라갈 수 있음 ㅠ
계단이었으면 울었을거야 ㅠ
그렇게 맨 꼭대기 층 입성!
종탑 전망대답게 가장 먼저 어마어마한 크기의 종이 날 반겨줬다.
와 근데 이런 종을 태어나서 이렇게 가까이서 보긴 또 처음 ㄷㄷㄷ
어마어마하게 크구나 진짜....
종에 화려한 문양이 새겨져있어서 넋놓고 바라봤는데 가만 보니 종을 메달아 둔 저 기둥에도 화려한 문양이....
역시 뭐 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네....
그리고 마침내, 그제서야 나는 베네치아 본섬의 전경을 볼 수 있었다.
베네치아 입성 4일만에 이룬 쾌거 ㅠㅠㅠ
(저 멀리 보이는 다리가 내가 매일 버스 타고 다녔던 그 다리임. 메스트레와 본섬을 이어주는 유일한 다리)
빨간 지붕으로 가득한 도시를 내려다 보니 여기가 진정 유럽이 맞구나.
(갑자기 그 생각 나네. 윌 스미스가 한국 와서 한국 건물은 옥상에 전부 잔디가 깔려있다고 놀랐다고 했던 일화 ㅋ)
산 마르코 광장 옆쪽으로 뻗어있던 선착장들.
에메랄드 빛 바다가 함께하니 더욱 예쁘다.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이 있던 산 조르조 섬. 여기서 이렇게 보니까 그냥 성당 하나 있는 섬이었구나.
큰 섬일 줄 알았는데 ㅎ
다시 한 번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내가 왜 이 건물에 반했는지 알겠지? 진짜 위치 선정이 신의 한 수임.
(저기 왼쪽 뒤에 있는 건 산티시모 레덴토레 교회임)
그리고 여기 전망대에 올라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맞은편 건물 옥상에 깜찍한 루프탑 레스토랑이 +_+
걸어다닐 땐 절대 존재를 알 수 없었던 어마어마한 레스토랑이었다;;;; 저기서 밥 먹으면 뭘 먹어도 맛있을 듯 ㅠㅠ
(그러고 보니 밀라노에서도 대성당 테라스에 올라갔을 때 그 높이에 준하는 옆 건물의 루프탑 레스토랑을 본 기억이;;;)
아무튼 좋았다. 비가 내리지 않아줘서 고마웠고,
비구름이 깔려있긴 했지만 햇살이 드문드문 내리쬐어줘서 이렇게 멋진 뷰를 볼 수 있었기에.
여기 안 올라왔으면 정말 두고두고 후회했을거야 ㅠ
끝내 못 들어가 본 산 마르코 대성당.
이렇게 지붕 감상이라도.
바람 솔솔 불던 전망대 벽에 기대어 잠시 멍-
그저 멍- 하니 바라보는 것만도 충분히 행복했던 시간.
귀엽다.
(저기가 플로리안 앞 노천 테이블임)
저기는 전날 밤의 포스팅에서 소개했던 나머지 두 곳 ㅎ
전망대 한 켠에 집에 전화하라며 이렇게 국제전화가 되는 공중 전화를 설치해 뒀던데,
안그래도 여기서 "아, 여기 엄마 데리고 오면 참 좋겠다" 생각하고 있었건만 역시 그런 생각 하는 사람이 나뿐이 아닌가보다.
아예 이렇게 전화기를 설치해 뒀을 줄이야 ㅎㅎ
(그리고 진짜 센스있는게, 전화기 위에 '텔레폰'이라고 써놓지 않고 '집에 전화하세요'라고 써놓았음 ㅋ)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점심은 처음 본섬에 들어왔을 때 먹었던 '달 모로의 프레쉬 파스타 투 고'에서 해결하기로 했는데,
줄 뭥미;;;;; 전엔 분명 한산했는데...
근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 날은 비가 많이 내렸어서... 아마도 비 때문에 사람이 없었던 거고 원래는 이렇게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저 앞에 몰려있는 애들도 전부 다 여기 파스타 손님임 ㅎㄷㄷ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겨우 입장.
이번에도 역시나 내가 한국 사람인 걸 눈치 채고는 곧바로 우리말로 주문을 받았는데
내가 "나 이틀 전에 왔었고 지금 두 번째 방문이다"라고 말했더니 "감사합니다"라고 우리말로 또박또박 인사를 ㅋ
암튼 "이틀 전이면 너 사진 우리 페이스북에 있을거야 찾아봐봐"라고 하길래 알겠다고 하고 파스타를 받아 나왔다.
베네치아에서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게 바로 길바닥에 앉아서 식사 한 번 해보는 거였어서
파스타 테이크아웃 해서 곧장 근처에 사람이 없던 곳으로 가 대충 앉아서 맛있게 쳐묵쳐묵하기 시작했는데,
아 여기 뷰 포인트가 죽이는구먼?
이렇게 고요한 운하 위에서 조용히 움직이는 곤돌라와 곤돌리에를 보며 식사를 하고 있자니 아주 파스타가 맛깔난다야 +_+
으헤헤 -
행복해 -
근데 혼자 잘 먹고 있는데 같은 파스타 가게에 있던 여학생들이 단체로 찾아와서 옆에 앉아가지고 막 떠들며 먹기 시작하는 바람에...
에이 뭐 어차피 나는 다 먹었으니 잘 됐지 ㅋ
근데 파스타 다 먹고 일어서자마자 뭔가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하길래 발걸음을 좀 서둘러 재촉했는데
아니나다를까, 결국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ㅠ
일기 예보가 결국 맞았어 ㅠㅠㅠ
방심하고 우산 안가지고 나왔던 상황이라 홀딱 젖음 ㅇㅇ
결국 급하게 버스 정류장으로;;;;
근데 진짜 웃긴게...
저기 위에 하늘은 되게 맑은데, 아래쪽 자세히 보면 비가 엄청 쏟아지고 있는 중임;;;;
아 베네치아 날씨 변덕스러운 건 정말 제대로 경험하고 가는구나 ㅎㅎ
아 그리고,
요 며칠 이 동네에 있으면서 느낀건데,
버스 탈 때 원래 저기 단말기에 버스 티켓을 가져다 대고 타야 하는데
일부 현지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은 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고 그냥 타더라.
근데 버스는 티켓 검사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런 부분에선 오히려 관광객들만 열심히 티켓 사서 쓰는 느낌임;;;
(수상 버스도 사실 티켓 안 찍고 타도 모를 정도의 보안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거긴 가끔 검사하기도 함. 나도 검사 한 번 당해봤음)
아무튼 홀딱 젖은 채로 버스에 올라 타 다시 메스트레 쪽으로 돌아가는데,
왼쪽이 베네치아 본섬이고 오른쪽이 메스트레 역 방면인데,
먹구름이 점점 왼쪽으로;;;;;
;;;;;;
벗어나길 오히려 잘 한 듯;;;;;;
근데 응????
갑자기 이게 뭥??????
암흑??????
와 진짜 완전 순식간에 시야가 확 가려질 정도로 깜깜해져서 정말 놀랐다.
비가 갑자기 그냥 좀 많이 내리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하늘에 구멍난 수준으로 쏟아져서 정말 놀랐음;;;;;
근데 왜 숙소 돌아오니까 또 이렇게 해가 뜨는거니.....
왜....
대체 왜......
(그냥 사진만 봐선 모르겠지만, 아까 본섬에서 비 맞기 시작한 것 부터 여기 숙소 돌아와서 햇빛 보는 데까지 1시간도 채 안 걸렸...)
그래도 뭐, 어차피 베네치아에서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봤으니 미련은 없었다.
슬슬 체크아웃을 위한 짐도 싸야 했기에 일단 조용히 지난 무한도전 받아 보며 컵라면으로 저녁을 해결했음.
한 도시에서 컵라면 + 햇반 한 번씩 먹기로 한 나의 계획은 참 신의 한 수 인 듯.
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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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파스타 집에서 "페이스북에 너 사진 있을테니 찾아봐"라는 얘기 듣고 찾아봤는데 진짜 있다 ㅋ
처음 갔을 때 주문했던 파스타 나와서 먹으려고 했을 때
"친구, 나랑 같이 사진 찍자"고 저 직원이 얘기하길래 흔쾌히 응해줬던건데 그 날의 사진이 이렇게 페이스북에 올라갔음 ㅋ
가끔 한가할 때마다 이렇게 손님들이랑 사진 찍어서 자신들의 페이스북 공식 계정에 올려주는 모양인데,
너무 쿨하고 위트있던 친구들이라 솔직히 이 친구들 때문에라도 여기 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진짜 마케팅이 뭔지 제대로 느꼈던 순간 +_+ 잊지 못할 거야!
PS - 한국 사람이 얼마나 많이 다녀갔으면 저렇게 손가락으로 하트 모양 만드는 것 까지 알고 있을까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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