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트로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말 아주 어쩌면 큰 낙심에 빠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안그래도 웃돈을 주고라도 귀하게 이베이에 올라왔던 원판을 사려고 벼르고 있던 참이었으니.
10년 전 베이프(Bape)에서 '샤크 피규어(Shark Figure)'라는 피규어를 출시한 적이 있었다.
베이프 매장 인테리어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커다란 마네킨(이라 부르는게 맞는진 모르겠다. 옷을 입히는 용도는 아니니. 아무튼 그 놈)을
지칭하는 이름인데 그와 동명의 14인치 피규어를 자체적으로 한정 출시 했던 것이다.
피규어는 약 14인치의 크기로 만들어졌다. 40cm정도 된다.
(12인치 피규어를 몇 채 가지고 있는데 비율이 맞지 않아 함께 진열하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그보다 작은 것이 아니니 기분은 좋다. 장난감은 뭐가 됐든 역시 커야 제맛이거든.
앞에서 잠깐 말했던 매장에 세워져 있는 실제 마네킨(이라 부르는게 역시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놈)의 사진이 케이스에 함께 인쇄되어있다.
베이프 매장을 한 번이라도 가 본 사람이라면 이 녀석이 생각보다 위엄있다는 걸 알텐데 본 적 없다면 역시 별로 대단해 보이진 않을 듯.
꺼내 보았다.
포장이 생각보다 고퀄이라 놀랐다.
(이건 반어법인 걸 눈치채주었으면 좋겠다)
지금 유행하는 베이프의 옷이 10여년 전에도 대한민국을 강타했었다고 말하면 지금 20대에 막 접어든 친구들은 놀라겠지?
근데 그게 사실이다. 적어도 내 기억엔 오히려 지금보다 그때가 더 대단했다. 그때가 좀 더 쿨했고. 여튼.
베이프의 지금을 있게 만든 샤크 후디를 풀-짚-업 하고 있는 형태를 본 떠 만들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는 있지만 무섭지는 않다. 좀 억울해 뵈기도.
나름 디테일에도 신경 썼다는 건 신발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눕혀놓고 보니 잘 안 보인다.
그래서 꺼내 세웠다.
옆에 비교할 물건을 두지 않은 채 촬영해서 이게 대체 얼만하다는건지 아마 다들 감이 안 잡힐 것 같다.
귀찮아서 옆에 무얼 둘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냥 크다고 말할 테니 크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복장도 스트리트 패션이다 보니 키가 더 작아보이는 느낌도 있다.
그 와중에 바지 핏은 좋네.
어흥.
아, 호랑이가 아니지.
상어는 어떻게 울지?
베이프의 옷을 몇 개 가지고 있긴 한데 샤크 후디는 사 본 적이 없다.
지인들이 가지고 있던 걸 잠깐 뺏어 입어본 정도가 전부라 샤크 후디에 대한 추억 같은 건 따로 없는데
그래도 뭔가 20대 청춘을 보내며 숱하게 봐왔던 옷인지라 꽤 친근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생각 외로 디테일하다.
베이프 옷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저기 소매 시보리(리브)에 있는 네모난 디테일이 무언지 아마 알 듯.
신발의 미드솔에도 베이프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
가장 대표적인 베이프 스타를 신기지 않은 것이 조금 아이러니 하지만 아무튼 신발의 표현에도 심혈을 기울인 눈치.
뒷 부분까지도 섬세하게 살려냈다.
깨알 같은 베이프 데님 백포켓 표현력.
하지만 리트로 였다면 좀 더 퀄리티를 끌어 올렸어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은 여전히 든다.
10년 전에 만든 것과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 건 사실이니.
근데 또 생각해보면 굳이 뭘 끌어 올려 표현할 만한 디테일이나 디자인이 들어간 것도 아니니?
매너있게 핸드폰 하나 정도 옆에 두어 사이즈 인증을 해보며 소개를 마무리 한다.
핸드폰은 삼성 갤럭시 S6임.
아이폰을 쓰지 않는 남자라.
호호호.
PS - 발매가는 17,000엔 정도. 현재는 당연히 솔드아웃 되었으며 이베이 등지에서 2배 정도 뛴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원판은 그 보다도 좀 더 비싸다.
Photographed by Mr.Sen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