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뱅크시(Banksy) 전시 이후 오랜만에 들른 아라 아트 센터.
전시 포스터의 키 컬러가 노란색인 것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전시,
내 수준에 딱 맞을 것만 같았던 전시,
너무너무 보고 싶었지만 게으른 성격 때문에 이제야 찾아오게 되었던 전시,
'디 아트 오브 더 브릭(The Art of the Brick)'을 관람했다.
이 전시가 일부에선 레고(LEGO)전시로 잘못 알려져있었는데
뭐 틀린 말이 아니긴 하지만 정확히 이 전시는 레고의 전시라기보다는
레고 브릭으로 예술 작품을 만들어낸 아티스트 네이선 사와야(Nathan Sawaya)의 전시였다.
그래서 전시장 곳곳에는 네이선 사와야가 했던 이야기들이 이렇게 액자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다들 레고 작품 보느라 정신이 팔려서 이걸 좀 놓치는 것 같아 아쉬웠다.
참 좋은 얘기들이 많았는데...
뭐 사실 작품마다 뭔가 심오한 주제가 있고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그런 건 아니어서 작품을 보는 그 자체로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저 "몇 개의 브릭을 쓴 건가", "이걸 어떻게 만들었나"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 정도도 이미 투머치하게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느낌?
부담없이 보면 되는 작품들이라 좋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수준에 딱 맞았다고 한 거기도 하고 ㅋㅋㅋㅋ
하지만 내 수준에 맞았다고 해서 정말 이 작품들이 그냥 가볍게 보고 말 수준은 아니었다.
네이선 사와야의 창의력이나 정교한 디테일 표현력은 보고 있으면 정말 소름끼칠 정도로 놀라워서
결코 우습게 볼 수는 없었던 정도였던 것 같다.
아래로 보게 될 작품들에 내 맘대로 주석을 달아두긴 할텐데 별 중요한 얘기는 아니니 스크롤 슥슥 내리면서
내가 전시를 대했던 것 처럼 킬링타임 정도로 생각하고 부담없이 감상하면 좋겠다.
내가 놀랐던 것 중 하나는 바로 이런 그림들이었는데,
레고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반드시 입체일 필요가 없다는 발상을 했다는 것과 그 정교함이 나를 아주 놀라게 했던 것 같다.
밑그림을 대체 얼마나 그렸을까.
그라데이션 표현력은 또 어쩔거야.
O-O
집으로 가져가고 싶었던 작품들이 몇 개 있었는데 이 헌팅 트로피도 그 중 하나였다.
아니 너무 귀여운 거 아냐 이거?
메모와 스케치는 모든 아티스트들에게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습관인 듯.
※ 레고 브릭 특성상 강한 그림자가 생겨야 더욱 그 진가가 드러나기에
전시장에 놓인 작품 대부분에는 이렇게 강한 콘트라스트를 만들어내는 조명이 쏘여지고 있었다.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이 작품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려보니 이건 정말 아기 걸음마 수준 ㅋㅋㅋ
그래도 이미 충분히 디테일하다 +_+
너무 예뻤던 크레용 시리즈.
크레용 껍데기를 벗겨본 사람만이 알아볼 수 있는 이런 디테일은 깨알 같은 재미 요소다.
이 전시의 오피셜 포스터에 등장하는 바로 그 작품.
네이선 사와야의 'Yellow' 시리즈 중 하나.
실제로 보니 더 그 아우라가 어마어마하더라.
특히나 가슴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브릭들은 정말 ㄷㄷ
(이 작품을 보는데 몇몇 어린이들은 이 작품에 굉장한 충격을 받더라. "엄마 왜 쟤는 가슴을 찢고 있냐"며...)
본격적인 전시는 이제부터 시작.
내가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들 중 스케일 면에서 가장 놀랐던 작품이 3개 있었는데, 이 공룡 뼈대가 그 중 하나였다.
(무려 80,020개 브릭이 쓰였;;; 실제 네이선 사와야가 만든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에 속한다고 ㅎㅎ)
근데 그렇게 큰 작품이라고 듀플로같은 큰 브릭을 쓴게 아니라 진짜 작은 레고 브릭을 가지고 만들었음 ㄷㄷ
인터뷰 보니까 한 계절 내내 만들었다고 하던데... 게다가 너무 정교해서 더 놀랐어 정말...
네이선 사와야는 사람의 몸짓을 표현하는 것에 큰 욕망이 있었던 것 같다.
이 공간을 돌아보니 그 생각이 정말 들더라고.
가만 보고 있으면 생각보다 너무 정교해서 더 놀라게 되는 작품들의 향연.
손 ㅠ
이 작품은 뭔가 했더니 작품명이 가면? 해서 가까이 가서 보려고 근처로 가보니,
와 소름.
자신이 원하는 것만 타인에게 보여주려 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라는데
그저 어린이들이 좋아할만한 동물이나 사물을 만드는 것만 할 줄 알았더니
제법 심오한 이야기도 할 줄 아는 멋진 작가였어 bbb
갑자기 작품 하나하나 더 멋있어 보인다...
조명 탓인가 - 이상하게 차이니즈 레스토랑 입구 같네...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들었던 작품.
두 손 꼭 잡은 노부부 처럼 보여서 너무 보기 좋았는데 작품명 알고 나서 더 좋아졌다.
작품명이 무려 영원임 영원 >_<
이번 전시에서 마주한 네이선 사와야의 이야기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
어쩜 이런 발상을 할 생각을 했을까.
놀랍다 정말.
그래서 이제부턴 예술과 관련된 작품들을 만나게 되는데,
와 이 피아노 뭐야. 뭐가 이렇게 진짜 같냐.
세상에 누가 보면 그냥 피아노 위에 레고 브릭 올려둔 줄 알겠네.
그치만 피아노 속 까지 몽땅 레고 브릭으로 꽉꽉 채워져 있다는 거 ㄷㄷㄷ 어쩜 저렇게 정교하지;;;
내가 여기서 더 놀란 게 하나 있는데 뭐냐면,
이 피아노에 쓰인 브릭이 2만개쯤 되던데, 아니 그럼 진짜 아까 본 그 공룡뼈대에 8만개가 쓰인거면 그건 얼마나 큰 거야 ㅋㅋㅋㅋ
아무리 생각해도 놀랍다 정말 ㅋㅋㅋㅋ
이건 인증샷 찍으라고 아예 작정하고 셋팅해 둔 느낌 ㅋㅋㅋㅋ
스케일 면에서는 내가 공룡뼈대 다음으로 놀랐던 ㅋㅋ 모아이 석상 +_+
쉐입 자체는 부드러운 곡면으로만 보여서 되게 단순해보이지만
이 작품에는 무려 7만 5천여개 브릭이 쓰였음 ㅋㅋ
역시 공룡뼈대 만큼 엄청 거대한 작품!
근데 놀라운 건, 네이선 사와야의 작품 중엔 가장 큰 스케일에 속하는 작품인데
실제 현존하는 모아이 석상 중 가장 작은 석상을 본 떠 만든 크기라고 ㄷㄷㄷ
그럼 다른 모아이 석상들은 대체 얼마나 크다는거야.....
암튼 내가 네이선 사와야의 전시를 보며 그에게 놀란 건,
실존하는 무언가를 레고 브릭으로 재현할 때, 그저 모양만 따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예 스케일까지 1:1로 본 떠버린다는 점이었다.
이 모아이 작품 뿐 아니라 아까 피아노 작품도 같은 경우임.
진짜 아티스트다운 집념!
이탈리아에서 진품으로 만나본 적 있는 '다비드'상도 레고로 재현!
아 진짜 아무리 봐도 신기해 이런 입체적인 구현력 +_+
스케일은 1:2로 오리지널 작품의 절반 크기지만 역시 원작과 마찬가지로 오른쪽 다리 뒤에 지지대를 세운 모습을 똑같이 재현했음,
아니 저건 ㅋㅋㅋ
뭉크의 '절규' ㅋㅋ ㅠㅠㅠㅠ
아 진짜 이거 정말 너무 잘 만들었더라 ㅠㅠㅠㅠ
사람 부분만 입체로 만든 게 특히 더욱 멋졌음 ㅠ 그냥 평면으로 했어도 멋있었을텐데 굳이 입체로 ㅠㅠㅠㅠ
인터뷰 보니까 그림 속 미묘한 감정을 표현하려고 저기 눈이랑 코에 구멍을 그냥 뒀다더라 ㅠㅠㅠㅠ 너무 세심해 ㅠㅠㅠㅠ
세심한 건 여기 클림트의 '키스' 작품도 마찬가지.
진짜 그냥 평면으로 재현하는 것도 충분히 쉽지 않았을텐데 굳이 이렇게 입체로 만들어냈다 ㅠㅠㅠㅠ
근데 그 덕분에 오히려 클림트의 키스 작품이 더욱 현실적으로 보이는 아이러니!!!!
이거 봐 얼마나 정교함 진짜 ㅠㅠㅠ
(좀 전에 봤던 뭉크의 절규 작품이나 이 클림트의 키스 작품도 모두 실제 작품과 동일한 스케일인 1:1 사이즈로 만들어진 작품임!)
'아르놀피니 부부의 자화상'도 1:1 스케일로 재현되었다.
역시 인물 부분만 입체로 표현했는데, 눈 코 입 부분을 조명의 그림자가 떨어지는 부분까지 계산해서 만든 것이 정말 소름.
이렇게 역사적으로 유명한 미술 작품들을 레고 브릭으로 재현할 생각을 했다는 것도 정말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부분이다.
아까 마주했던 그의 이야기 중 "몇 개의 레고 브릭을 가지고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 예술의 길로 떠나기를 희망한다"는 말이 새삼...
이쯤되니 슬슬 네이선 사와야가 무서워지는 것 같기도 한데 ㅋㅋㅋㅋ
중국에서 발견된 병마용 궁수를 재현한 작품도 놀라웠다. (뒤에 붙여놓은 디오라마용 이미지 때문일수도 있지만 아무튼 bb)
이 역시 1:1 스케일로 제작되었다는데 정말 이 사람이 만들지 못하는 것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까 싶더라 이젠 ㅎㅎ
그의 관찰력이나 도전 정신이 진짜 대단하다는 것을 느낀 순간.
이제 1:1 스케일은 더 놀랍지도 않다 정말 ㅋㅋ
네이선 사와야의 미술 작품에 대한 도전은 계속 됐는데,
이건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를 재현한 것이고,
이건 우리나라 사람들에겐 선술집 같은 곳에서 많이 봤을법한 그림으로 잘 알려진 ㅋㅋ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를 레고 브릭으로 만든 작품이다 ㅎ
※ 쎈스씨 알쓸신잡 - 반 고흐도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판화 작품을 소장했었다고 함
정말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 정교하고 황홀해서 넋 놓고 보게 되는 전시였다.
분명 레고 브릭으로 만든거니 장난감처럼 대하게 되는 마음이 있는데
이렇게 현대 미술사에 빼놓을 수 없는 유명 작품들을 재현한 것을 보고 있자니
대체 어디까지 가볍게 대하고 어디서부터 심오하게 바라봐야 할지 머릿속에 혼돈이 ㅋㅋ
어느덧 전시의 후미.
난 과연 이렇게 한가지에 온전히 미쳐서 빠져들어본 적이 있을까.
갑자기 그 생각.
그저 별 생각없이 오- 오- 하며 볼 전시라고 생각하고 온 건데,
생각보다 너무 고퀄이었던 작품의 향연에 오히려 그저 '레고로 만든 작품이 있는 전시' 정도로만 치부했던 내 스스로가 부끄러워짐.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는.
그렇게 한참을 마음 속 울림에 취해 있다가
전시장의 끝에서 급 현실로 돌아오게 됐네.
바로 이 공간을 마주하고 나서 ㅋㅋㅋㅋㅋ
아 정말 ㅋㅋㅋㅋㅋ
레고 때문에 전시장에 어린이들이 많을거란 생각을 하긴 했는데, 막상 이렇게 어린이 천국인 걸 새삼 깨닫고 나니 갑자기 공포가 ㅋㅋ
(여기 계신 부모님들 참 대단하십니다 +_+)
여기선 레고 브릭들로 무한의 창의력을 발휘해 각자가 아티스트가 되어 볼 수 있었는데
난 당연히 저 틈에 끼어들 수 없었으므로 그냥 슥 바라보기만 ㅎㅎ
심지어 레고 비디오 게임도 있었는데 역시 모든 어린이들이 게임기 앞에 앉아 있느라 나는 앉아 볼 엄두도 못내고 ㅋㅋㅋㅋ
네이선 사와야의 비디오를 잠시 보며 전시의 여운을 조금이라도 더 즐겨보기로 하다가,
이너 피스를 외치며 전시장을 돌아 나서기로 했다.
거기 더 있다간 어린이들 속에 파묻힐 것 같아서 ㅋㅋㅋㅋㅋ
정말 내 수준에 딱 맞았던, 하지만 생각보다 더욱 놀라웠던 전시였다.
변호사라는 멋진 직업을 가졌지만 자신의 방에 앉아 레고 조립을 하는 것에 더 큰 행복을 느꼈던 사나이.
그는 돌연 변호사 사무실에 사표를 던지고 난 뒤 3년만에 레고 브릭으로 만든 자신의 작품을 가지고 첫 전시를 열었고,
폭발적 반응을 일으켰던 그 전시가 지금의 네이선 사와야를 만들었다고 한다.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지금 정말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걸까.
많은 생각이 들게 한 전시.
왜 CNN이 극찬한 '꼭 봐야할 10대 전시'에 이 전시가 들어가는지 알겠더라.
마지막에라도 보길 정말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