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음을 이겨내고 꼭두새벽부터 인천 국제 공항.
근데 나보다 빠르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여기에 한 10,000명쯤 있는듯 x_x
귀찮아서 다음 사진은 그로부터 6시간쯤 후에 찍음.
이 음료수 사진이 그 시작이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일본에 무사히 도착했다는 뜻이지 +_+
이번 여행지는 나가사키였다.
맞다 그 곳. 짬뽕과 카스테라의 앞에 붙는 그 단어와 같은 곳.
나가사키.
나가사키는 일본의 가장 서쪽에 위치한, 굉장히 작은 규모의 소도시로 바다에 인접해 있는 항구 도시다.
한국에서는 아직 대중적으로 알려진 관광지는 아니지만, 스카이스캐너의 2017년 발표 자료를 보면
한국에서 인기가 급상승한 해외 여행지 중 상위 10개 도시에 속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마냥 좋아하기만 할 곳은 아닌게, 사실 이 곳은 군함도로 잘 알려진 하시마 섬이 있는 곳이라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면 썩 반가운 곳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굳이 이 곳을 외면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가사키를 찾았다.
좀 전에 나가사키 공항을 찍은 사진이 지나갔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려면 일단 공항 버스를 타야 한다. 버스 이동 시간은 대략 넉넉하게 1시간 정도를 잡으면 되고
버스를 타려면 티켓을 구매해야 하는데 티켓 발권기는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설치되어 있으니 거기서 '왕복'으로 뽑으면 된다.
어차피 다시 돌아올 때 나가사키 공항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편하게 왕복으로 뽑아두면 좋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왕복으로 뽑으면 할인이 되기 때문에 우리나라 돈으로 2000원 정도를 절약할 수 있다.
암튼 공항이 굉장히 작아서 버스 타는 곳은 어린이도 쉽게 찾을 수 있을 정도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가사키 역으로 가는 사람들이 가장 많은데 그 기준으로는 4 또는 5번 탑승장을 이용하면 된다)
공항과 시내가 제법 떨어져 있는지라 중간중간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대개가 시골 풍경인데
그래서 좀 심심하기도 하지만 시원하게 보이는 하늘과 그 아래 세워져있는 아기자기한 건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금새 한국과는 다른 풍경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나가사키 역 근처쯤 왔을 때, 나는 숙소로 곧장 가기 위해
나가사키 역 바로 전 정류장인 오하토 정류장에서 먼저 하차했다.
그리고 숙소로 가는 길에 여기 저기 동네 분위기를 살필 겸 고개를 돌려 봤는데,
바로 저 앞에 바다가 보여서 굉장히 놀랐던 것 같다.
구글맵 보고 대충 짐작하긴 했지만 역시 바다는 지도로 볼 때와 눈으로 볼 때의 차이가 엄청난 듯.
나는 보통 에어비앤비를 이용하는데 이번 여행은 일부러 호텔로 잡아봤다.
일단 에어비앤비는 아침 비행기 이용자라면 체크인 시간이 보통 오후기 때문에 그 시간까지 캐리어를 맡겨둘 곳을 찾는게 어려워서
(물론 에어비앤비도 다른 장점들이 많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몸이 편한 게 최고일 것 같다는 생각에 호텔로 정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사실, 나가사키는 관광객이 그렇게 많은 곳이 아니기 때문에 에어비앤비가 그리 잘 발달되어 있지 않음.
그 영향도 컸네.
아무튼 이번에 잡은 숙소는 만만하기로는 지구 최강인 '토요코인'. 여긴 뭐, 서민에게는 그냥 평타치니까. 가성비로는 단연 압권이지.
숙소에 짐을 맡겨만 둔 채로 일단 동네 간지를 좀 보고 싶어서 바로 뒷 골목으로 들어가 봤다.
그러다 우연히 저기 문에서 누군가 나오는 모습을 발견해서 무심코 고개를 돌려 봤는데,
만약 사람이 거기서 나오지 않았더라면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을 정도로
아무런 간판 없이 조용히 운영되고 있던 저 곳은 바로 빵집이었다.
※ 나중에 이 곳의 이름을 알게 되었는데, 상호명은 '브레드 에이 에스프레소(bread A espresso)'였음
심지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을텐데) 저 안에 사람들이 빵을 사려고 줄서서 있는 모습이 보이길래
굉장한 맛집인가보다 싶어서 일단 나중에 다시 와보겠다는 생각으로 위치를 기억만 해두고 발걸음을 돌려 계속 가던 길을 가보기로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잠시 멈춰섰는데, 한국의 남은 시간 표시등과 다르게
여기는 막대 그래프가 점점 짧아지는 표시등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시간에 따라 위에서부터 아래로 점점 짧게 줄어드는 불빛은 익숙했지만 너비까지 다르게 하는 건 처음 보는 것 같아 인상적이었네.
과장되게 보면 와이파이 신호기 같기도 하고 ㅎ
아무튼 좋구나 나가사키.
사람도 별로 없고 (당연히 한국인도 안보이고)
날씨도 이 정도면 한국의 한파 대비 완전 포근한 정도니.
꼬마야 안녕?
10분 정도 걸었더니 작은 천길이 나타났다.
이 물줄기가 흐르는 방향을 따라 걸으면 곧장 바다로 이어지는데 그것 보다도 내가 이쪽으로 온 이유는 바로 저 다리 때문이었다.
나가사키의 시내는 생각보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제대로 마음만 먹는다면 솔직히 하루 안에 어지간한 명소는 다 둘러볼 수 있다.
그만큼 웬만한 곳은 도보 이동이 가능할 정도로 가깝고 그만큼 웬만한 곳이 '솔직히' 그리 대단하지도 않다.
오죽하면 저 다리의 이름이 메가네바시(안경다리)이며 나가사키의 명물 중 하나라는 소개글이 네이버 지천에 널렸을까.
물론 귀엽긴 했다만 나가사키의 스케일이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이 가는 대목이었기에
귀여운 아기를 바라보는 아빠 마냥 살포시 웃으면서 다리를 건너 그대로 지나가보기로 했다.
메가네바시에서 천길을 따라 다섯 블럭 정도 아래로 내려가보면 이렇게 메가네바시의 모양을 본 떠 만든 조형물을 볼 수 있는데
실제 메가네바시와는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 안경 가게 소유의 구조물이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저기 저 사람이 메가네바시를 만든 사람인 줄 알겠지만, 딱 봐도 그냥 저 안경 가게 사장님 얼굴이겠거니 싶었다.
여행을 왔으니, 그리고 한국에서 집을 나선 이래 아직까지 아무 것도 먹지 못했으니 식사를 해야겠지?
나가사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전무했기에 사전에 공부를 좀 '나름' 많이 하고 갔는데
그 중 알게 된 곳이 여기 '키친 세이지(Kitchen Sage)'라는 곳이었고
이 곳의 외/내부 사진과 이 곳에서 맛 볼 수 있는 음식의 정보를 알게 되었을 땐
무조건 나가사키에서의 첫 식사를 여기서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바로 찾아와봤음!
시간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찾아갔는데, 운 좋게도 직장인 러쉬가 시작되기 한 10분 쯤 전에 먼저 도착한 덕에
다른 손님들과 달리 편하게 넓은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근데 나중에 보니 저기 저 직장인들이 앉은 테이블이 참 예뻤더라...)
가게는 생각보다 아담했는데 특이하게도 내부 인테리어가 나가사키 시내를 돌아다니는 노면전차처럼 꾸며져 있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노면전차는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교통 수단인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잠시 후에 제대로 할 예정이라 일단은 스킵.
워낙 가게 안에 걸려있는 액자가 많아서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무엇부터 봐야 할지 도통 정신이 없지만
자세히 보면 저기 왼편에 유명인의 방문 인증 싸인도 걸려있고, 제법 유명한 곳임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어 기분은 좋았다.
메뉴판은 이렇다. 귀엽게 모두 자필로 적혀 있고 일부는 저렇게 그림까지 그려넣어 (색칠까지 해서!) 친근한 감성을 더욱 부각시켰다.
아, 뭐 일본어를 전혀 모른다고 해도 걱정할 것은 없다. 여기엔 한글로 된 메뉴판도 따로 구비되어 있으니 부탁하면 그걸 가져다 주므로.
나마비루(생맥주)를 먼저 쭉 들이키고 싶었지만 생맥주는 구비되어 있지 않다하여 병맥주를 주문했다.
그래도 시원한 아사히 맥주가 나와주어 기분 좋게 원샷 캬 -
※ 저기 테이블에 미리 놓아져 있던, 커스터드 크림처럼 보이는 저것은 마요네즈였다. 처음에 저거 보고 엄청 충격 받았음.
잠시 앉아 기다리니 우리가 주문한 식사가 나왔다.
동반자가 주문한 것은 서비스 런치고 내가 주문한 것은 이 곳의 대표 메뉴, 도루코 라이스였다.
도루코 라이스는 돈까스, 나폴리탄(케첩 스파게티), 샐러드 그리고 카레 필라프가 함께 나오는 나가사키의 대표 음식 중 하나다.
나가사키에서 도루코 라이스의 대중화를 이끌어 낸 곳은 따로 있었지만
키친 세이지의 독특한 외/내부 테마같은 것들이 그 보다는 좀 더 내 감성에 더 맞았기에
도루코 라이스를 먹어야 한다면 이 곳이 좋겠다 싶어서 키친 세이지로 오게 된 것이었다.
(가격도 아주 조금 더 착한 편이고 ㅎ)
동반자가 주문한 서비스 런치는 도루코 라이스와는 살짝 달랐다.
카레 필라프대신 흰 쌀밥이 나왔고, 도루코 라이스에는 없는 함박 스테이크, 불고기 그리고
소세지와 치즈 고로케, 마카로니 샐러드가 담겨져 있었다.
사실 도루코 라이스나 서비스 런치 모두 음식의 퀄리티가 대단한 건 아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한솥 도시락에 담겨져 나오는 반찬들과 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나가사키의 의식주 문화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식단이고 또 키친 세이지가 주는 특별하고 즐거운 기운이 함께였기 때문에,
소박한 여행객의 입장에선 기분 좋게 경험해보기 좋은 한 끼 식사였다.
다시 먹겠느냐 묻는다면 내 기꺼이 그러겠노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기분 좋게 식사를 마치고 나니 열심히 걸어 보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마침 저기 귀여운 유치원생 아가들이 아장아장 걸어가는 모습이 보이길래 그를 따라 걸어보기로 했다.
소박한 동네의 소박한 소경.
크리스마스를 앞둔 나가사키의 골목 골목안 상점들은 저마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노래도 캐롤을 리메이크 한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 뿐이고
LED를 달아놓거나 쇼윈도에 시트지를 붙이는 정도?만 하는데 이 곳 나가사키에서는 이렇게 아날로그적인 면모를 볼 수 있어
더욱 마음이 들떴던 것 같다.
동네 자체가 인적이 드물다 보니 상점가와 주택가의 경계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걷다 보면 어느샌가 주택가였고, 또 걷다 보면 어느샌가 상점가였으니.
나가사키는 그렇게 아담한 동네였다.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우연히 한 사찰 앞에 당도하게 되었다.
우리말로 어떤 이름인지는 모르겠고 구글맵에서는 '초쇼지(Choshoji)'라는 이름으로 확인되는 곳이었다.
근데 네이버에서 초쇼지라는 이름으로 일본 사찰의 여럿이 검색되는 걸 보면
초쇼지라는 이름은 이 곳의 이름이라기 보다 규모로 나뉘는 이름 중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아가야 안녕?
와 - 여기 비주얼 뭐지.
모르고 지나쳤으면 너무 섭섭할 뻔 했을 정도로 여기 뷰가 장관이어서 깜짝 놀람!
아 멋지다 정말 +_+
계세요?
무심코 들어가 본 곳인데 너무 이뻐서 한참을 넋놓고 구경했다.
같이 사진도 찍어보고 ㅋ
내 복장이 좀 안어울리긴 했지만 ㅋㅋㅋ
사찰에서 나온 뒤로 또 이곳 저곳 골목길을 누비다가 어느새 이 곳에 당도했다.
하마노마치 아케이드.
여기는 나가사키 시내에서 가장 번화한 상점가로 시장과 백화점이 모여있으며 그 모든 길이 아케이드로 덮여있는 곳이다.
일본은 크리스마스라는 날이 따로 휴일로 정해져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래서 그냥 각자가 알아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길 뿐인데
그래서인지 일부 골목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좀 나는 것 같았지만 대부분의 거리는 이렇게 아무렇지 않은 평소의 모습을 띄고 있었다.
걷다 보니 좀 독특한 상점들도 보였는데
이 가게는 배, 선박과 관련된 기념품 같은 걸 파는 곳인 것 같았다.
근데 저 간판에 그림은 왜케 무섭지? ㄷㄷㄷ
일본오면 어쩔 수 없이 한 번은 들르게 되어있다는 돈키호테.
나가사키에서는 어디가야 돈키호테를 볼 수 있나 했더니 역시나 이 곳에 숨어 있었네.
근데 이 상점 거리를 얕봐선 안되겠다고 생각한게,
아니 이거 뭐야 ㅋㅋㅋ 우연히 중고 명품샵 앞을 지나는데 이게 떡하니 진열되어 있네 ㅋㅋㅋ
보고 있나 킴존스?
나가사키엔 빔즈(Beams)도 있다.
워낙 작은 도시라 내 관심을 끌만한 브랜드 스토어가 과연 있을까 싶었는데,
빔즈가 날 이렇게 반겨주네 ㅎ
그래서 구경 잠깐.
근데 빔즈보다 내 흥미를 더욱 자극시킨 곳은 따로 있었다.
여기는 테이크-오프(Take-Off)라는 편집숍으로,
할리우드랜치마켓(Hollywood Ranch Market), 블루블루(Blue Blue)를 필두로 약 50여개 이상의 브랜드 제품을 소개하는
프랜차이즈 편집숍의 나가사키 챕터였다.
이 곳의 존재는 사실 전혀 모르고 있었던 터라 우연히 걷게 된 길 한 켠에서 이 곳을 발견했을 때 굉장한 임팩트를 느꼈던 것 같다.
내가 왜 모르고 있었나 했더니, 이 편집숍은 한국에 아예 소개된 적이 없는 것 같았음. 네이버에도 안나오더라고?
암튼 취급하고 있는 브랜드와 아이템의 감도가 은근히 괜찮았어서 여기 둘러보는데도 지갑 단속하느라 꽤 힘들었음.
(나중에 보니 또 데지마워프 부근에도 매장이 하나 더 있더라)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을 때 받는 감동은 더욱이 이루 말할 수가 없는 법이다.
계속해서 쉬지 않고 나가사키 시안바시 쪽 골목을 여기 저기 돌아다녀봤다.
일본 특유의 소박한 감성이 곳곳에 배어있어서 딱히 뭔가를 하지 않더라도 그저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아무것도 안하면서 그저 걷기만 한 건 아니다.
그래도 나름 나가사키에 왔는데, 나가사키 명물 한 번 먹어봐야 하지 않겠어?
나가사키를 대표하는 음식이 짬뽕과 카스테라인데, 짬뽕은 나중에 먹어보기로 하고 일단 카스테라를 먼저 맛보기로 했다.
나가사키에서는 정말 굉장할 정도로 많은 곳에서 카스테라를 판매한다.
(공항에서도 당연하게 도쿄 바나나 따위는 볼 수 없고 카스테라만 수십여 종을 만나 볼 수 있을 정도로)
그 중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진 곳이 크게 3 곳인데, 가나다 순으로 나열하자면 '분메이도'와 '쇼오켄'이 있고
그리고 바로 여기, '후쿠사야'가 있다.
※ 역사로는 후쿠사야가 가장 오래 되었고 그 다음이 쇼오켄이다 (후쿠사야는 약 15대에 걸쳐 운영되고 있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후쿠사야와 쇼오켄은 정통 카스테라로 유명하고 분메이도는 그 보다 다채로운 품목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후쿠사야는 한국인에게도 당연히 잘 알려진 곳이라 이렇게 한국어로 된 메뉴판을 보며 편하게 카스테라를 주문할 수 있다.
뭘 살까 고민을 잠깐 했지만 역시 처음 와 본 거니까 기본 카스테라를 구입해보기로 했다.
선물용은 어차피 공항에 가도 있을 것이 분명하기에 따로 구입하지 않았음.
도루코 라이스를 먹고 나온 뒤로 계속해서 쉬지 않고 나가사키 번화가의 골목 골목을 돌아다니느라 슬슬 다리가 아파왔다.
나가사키는 규모가 작은 도시라 어지간한 곳은 도보로 이동이 가능한데,
그렇기 때문에 나가사키에는 지하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
택시, 버스 그리고 저기 보이는 노면 전차가 나가사키 대중교통의 전부다.
나가사키에는 정말 많은 전차가 있다. 들은 바에 따르면 일본 전역에서 퇴역한 전차가 모두 나가사키로 모인다고.
그래서 정말 각양각색, 형형색색, 전부 다른 모습의 수 많은 전차들이 열심히 나가사키 시내의 이곳 저곳을 누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일본의 교통 물가가 한국인 입장에선 비싼 편에 속하기 때문에 으레 겁을 먹기 일쑤지만
나가사키의 노면 전차는 걱정할 것이 없다. 탑승 시간이나 이동 거리에 상관없이 그저 120엔 정찰제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티켓을 구입해서 타는 법을 추천하지만 그냥 편하게 가지고 있는 동전을 써도 무방하다.
탑승은 뒷문으로 그냥 하고, 내릴 때 앞문에서 계산만 하고 내리면 된다.
나가사키 자체가 워낙 작기 때문에 큰 길로만 다니는 이런 노면 전차를 타는 것보다는
굽이굽이 작은 골목길을 직접 걸어다녀보는 것이 더욱 나가사키를 즐기기에 좋은 방법이지만
그래도 한국에는 없는 대중 교통 시스템인데다 운치도 제법 있으니 나가사키에 간다면 일부러라도 한 번쯤은 타보기를 추천한다.
물론 굳이 타지 않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저기 저렇게 귀여운 클랙슨, 경적 나팔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_+
이제 정말 좀 쉬어야겠다 싶어 찾아 간 곳은 바로 여기, 커피 앤티크 '남반차야'다.
※ 무려 160년이 넘은 민가를 개조해서 만든 카페라고!
카페 내부는 이렇게 생겼다. 정말 이름처럼 모든 것이 앤티크에 부합하는 분위기를 가득 품고 있었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저기 저 노부부 주인을 마주 바라볼 수 있는 바 테이블에 앉고 싶었지만 하필 그 자리에 손님이 앉아 있어서
우리는 아쉬움을 달래며 카페 안쪽에 위치한 일반 테이블 석에 자리를 잡아 앉았다.
근데 정말 여기도 분위기가 예술.
문득 한국엔 왜 이런 분위기의 카페는 없을까.
트렌디하고 세련되고 도외적인 카페는 많은데, 이런 분위기의 카페는 왜 없을까- 라는 생각.
메뉴판도 직접 적어 만드신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저기 영어로 적혀있는 카테고리명의 필체가 소중하고 귀엽게 다가왔다.
어쩜 >_<
셋트 메뉴도 있고 나름 이것 저것 있었지만 우리는 저녁 식사를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당 충전만 하기로 하여
카푸치노와 과일 믹스 주스 하나씩을 주문했다.
아 - 카푸치노 잔 보소. 이건 뭐 더 말이 필요가 없네.
그리고, 노부부 주인에게는 좀 죄송했지만 그 맛이 너무 궁금해서
아까부터 들고 있던 후쿠사야의 카스테라를 두 조각만 꺼내 먹어보기로 했다. (아니 근데 뭐가 이렇게 접시랑 잘 어울림?)
근데 정말, 와 - 이래서 나가사키 카스테라를 명물이라고 하는거구나 싶더라.
일본에 카스테라가 처음 들어온 것이 1570년대라는데, 그 때 가장 먼저 카스테라가 들어온 도시가 바로 나가사키라고.
한국에서 나가사키 카스테라가 유행할 땐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카스테라가 카스테라지 뭐 - 했는데,
(당연히 한국의 맛과 비교할 바가 아니겠지만) 나가사키 카스테라의 본고장에 직접 와서 진짜 카스테라를 맛 보니 와 - 이건 뭐...
정말 엄지를 수십개 척척!
무리할 필요 없는 여행이었고 일정이었기 때문에 그 뒤로는 숙소에 들어가서 한참을 쉬었고,
저녁 식사를 위해 다시 밖으로 나와서 이번에는 나가사키 역 방향으로 걸음을 옮겨봤다.
나가사키 역 앞에는 큰 스케일을 자랑하는 육교가 있다.
고작 삼거리일 뿐인데 육교는 무려 다섯개나 있다. (그 중 3개는 하나의 작은 공중 공터?로 이어진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이렇게 전차가 서는 정거장이 있는데,
육교의 가운데에 서서 이렇게 전차를 내려다 보는 것이 서울에서, 아니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라 꽤 재미있는 구경거리다.
우리도 그래서 한참을 서서 멍때리며 전차가 오가는 모습을 구경했다.
밤 바람이 제법 찼음에도.
그렇게 한참을 서서 전차를 내려다 보다가 문득 나가사키 역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저 아래 광장에서 무언가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행사가 진행 중인 것 같길래 가까이 가서 구경해 보기로 했다.
아마도 일본에서 유명한(것으로 추측되는) 개그맨들이 무대 위에 올라와있는 것 같았다.
무어라 무어라 한참을 떠드는데 느낌이 딱 개그맨 같았음.
뭐 당연히 알아들을 수 없었기에 잠시 바라보다가 이만 밥을 먹기 위해 발걸음을 돌리기로 했다.
저녁 식사는 데지마워프에서 하기로 했다.
데지마워프는 나가사키 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면 당도할 수 있는 항구 앞 작은 상점가다.
나가사키가 워낙 작은 도시라 관광객들에게 알려진 명소가 다 거기서 거기인데,
데지마워프도 제법 소개가 많이 되는 것 같길래 구경해 볼 겸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근데,
아 - 정말 여기서부터 이미 실망.
아니 이게 뭐라고 그렇게들 가보라고 한 것인가.
(심지어 사진 보면 알겠지만 북적이는 인파 따위도 없음!)
살짝 당황해서 일단 저 끝까지 쭉 한 번 걸어봤는데,
정말 가게들이 다 한산한 수준이라 도대체 여기를 왜 그렇게들 추천한 건지 이해가 잘 안갔...
어쨌든 왔으니 뭐라도 먹어야겠다 싶어서 그나마 나가사키 오기 전에 공부할 때 봐뒀던 '아침식당'이라는 곳에서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이름만 아침식당이지 뭐 저녁까지 영업하는 일반 식당임.
우리가 주문한 메뉴는 이러했다.
나는 회덮밥 정식을 주문했고 동반자는 장어 솥밥 정식을 주문했는데,
사실 둘다 잘 모르고 주문한거다.
(이 곳에서 해산물 BBQ를 먹어야 했다는 건 나중에야 기억이 났다)
얼떨결에 먹게 된 메뉴였지만 그래도 잘 먹었다. 나야 뭐 워낙 회를 좋아하니까.
장어 솥밥도 비주얼은 제법 좋더군.
비록 장어가 꼴랑 두 점 들어있긴 했지만,
그래도 나름 맛있었네.
그치만 우리 둘의 성에는 전혀 못미치는 식사였기에, 야식으로 뭐라도 하나 더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숙소로 돌아오던 길에 눈길이 갔던 작은 식당? 라면 가게? 같은 곳에 다시 들어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곳의 이름은 '야마야'였다.
한국인이나 관광객에게 알려진 곳이 전혀 아닌, 그저 나가사키의 작은 식당이었기에
한국말을 쓰는 우리가 이 곳에 먼저 와 있던 손님들이나 주인 내외분에겐 좀 낯선 존재였을텐데
그래도 사장님이 친절하게 메뉴판을 내어주시고 생글생글 웃으며 우리를 맞아주셔서 긴장된 기분은 금새 풀렸던 것 같다.
바 테이블에 앉으니 자연스레 눈 앞에 세워져있던 다양한 일본 술병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심지어 잔으로도 판매한다고 적혀 있었지만)
우리는 얌전히 나마비루를 주문했고, 데지마워프에서 받은 실망감은 그것으로 금새 잊어버릴 수 있었다.
오 근데 - 식당 안의 TV 속에서 반가운 존재를 만나게 됐다.
그 주인공은 바로 방탄소년단!
AMA 퍼포먼스 이후로 아주 국제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친구들인데
이렇게 일본 TV 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나니 더욱 반갑더라!
한참 보다 보니 트와이스도 나오길래 이 프로그램 뭔가 했더니 일본의 연말 무슨 축제같은 프로그램? 암튼 그런거였음.
우리나라 가요대전 같은 뭐 그런 느낌.
일본에서도 인기가 대단한가보구나 +_+ 정말 K-POP 만세다!
즐거운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 주문했던 교자.
살짝 탔지만 속이 굉장히 알차고 맛있어서 통과.
그리고 나온 이 라멘이 바로 이 집의 하이라이트 메뉴였는데 이름이 뭔지는 까먹었다.
아무튼 메뉴판에 가장 크게 표기되어 있었고 유일하게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던 메뉴라서 인기 메뉴라는 걸 금새 알아챌 수 있었음.
인상적이었던 건 보통의 라멘들과 달리 파를 송송송 썰어 내어 올리는 게 아니라 길게 세로로 채를 썰어 내어 올렸다는 점이었고,
쌀국수마냥 숙주나물이 함께 들어간다는 점이었음.
그래서인지 보통 라멘처럼 깊고 묵직한 맛이 아니라 좀 더 가볍고 시원하게 먹기 좋았던 것 같다.
꽤 괜찮았음!
나가사키엔 뭐가 있는지, 아니 나가사키가 어디에 있는 곳인지도 잘 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티켓부터 끊었던 여행.
첫날의 일정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도쿄나 후쿠오카에 비해 한국인에게는 좀 덜 알려진 작은 도시라 나도 내심 걱정이 좀 있었는데,
그래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는 도시 같아 즐거웠던 것 같다.
푹 자고, 내일을 또 준비해야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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