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튜블라(Tubular)와 엔엠디(NMD)로 스니커즈 마켓의 우위를 선점한 아디다스 오리지널스(adidas Originals).
2017년 그들이 꺼내든 카드는 이큐티(EQT)다.
그를 알리는 전시가 홍대 aA 디자인 뮤지엄에서 열렸다.
전시는 1월 26일부터 3월 10일까지 일반에 무료로 개방되며
그 사이 몇가지 재미난 이슈가 한정된 인원을 위해 마련될 예정이다.
(2월 3일에는 푸샤티가 내한한다!)
입장.
전시장은 지하에 마련되어 있다.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No Second Guessing, 속단은 금물".
알듯 말듯한 뜻을 지닌 이번 전시는 EQT의 탄생을 기념한다.
1990년대에 만들어진 스니커즈 EQT가 2017년에 어떠한 모습으로 돌아왔는지를,
아디다스 오리지널스는 시대적 오브제, 예술가들이 남긴 사진들을 통해 설명한다.
그와 함께 독일에서 어렵게 공수한 200여족의 스니커즈 컬렉션은 EQT의 진화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90년대에 만들어진 스니커즈가 이번 전시의 근간이기에 전시 공간의 대부분은 90년대를 연상시킬 수 있는 오브제로 가득하다.
어지럽게 쌓여있는 브라운관 TV에서는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의 EQT 캠페인 영상이 쉴 새 없이 반복 재생되고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서는 어렴풋이 그를 바라보고 있는 나, 그리고 당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90년대의 문화에 어우러진 나, 그리고 당신이기도 하다.
속단은 금물.
역시 90년대를 대표하는 VHS 비디오 테이프.
그 위에는 녹색 빛의 형광등과 적색 빛의 형광등이 놓여져 있는데,
우리는 왜 '녹색'과 '적색' 빛이 쓰였는지를 궁금해 해야만 한다.
이번 전시의 주를 이루는 것은 역시 스니커즈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는 EQT의 진화를 알리는 이번 전시를 위해
독일을 대표하는 스니커즈 셀렉트 샵 오버킬(Overkill)의 공동 대표 마크 로이슈너(Marc Leuschner)가 그동안 수집해 왔던
다양한 에디션의 EQT를 수면 위로 끄집어 냈다.
시대별로 정렬된 200여족의 스니커즈는 다시 시대적 오브제와 나란히 놓이며
갤러리들에게 EQT의 역사적 흐름을 보다 쉽고 빠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포장은 벗기고 정수만 남기는 EQT의 명확하고 순수한 태도. 그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형태와 방법론.
이 과정에서 90년대의 브랜드 오리지널리티로 돌아가 (중략) 과거와 접목되어 예감케 되는 미래는 EQT의 귀환으로 명백해질 것이다."
마치 미래의 어디에선가 볼 수 있게 될 것만 같은 아카이브 월.
그가 내뿜고 있던 공간의 아우라는 과연 이번 전시의 핵심이라 할만하다.
벌어진 입을 다물고 정신을 가다듬고 나면
입구와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대적 오브제와 함께 EQT의 역사를 천천히 훑어보게 된다.
EQT OG.
1991년, 소비자들의 사고 방식이 바뀌길 원했던 아디다스(adidas)가 만든 새로운 스니커즈.
제품 자체가 영웅이 되길 바랬고, 소비자들이 퀄리티에 집중하길 바랬다.
디자인과 로고 부터 모든 것이 새로워졌지만
화이트와 블랙, 그레이 그 위에 더해진 청량한 포레스트 그린 컬러는
아디다스의 역사를 이어간다는 속뜻을 묵묵히 대변하며 정통성을 잇고자 했다.
EQT의 슬로건이 'The Best of adidas'인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워크맨을 들고 다니던 그 시절.
당시의 카탈로그.
2005년에는 1991년 출시 되었던 EQT OG 버전을 그대로 복각 출시하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엔 1,991족 한정 출시로 1991년이라는 EQT OG의 출생 년도를 기념한 바 있다.
다양한 컬러웨이가 만들어졌으나, 역시 모노톤 위에 얹혀진 포레스트 그린이 가장 EQT와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디자인의 다양한 변주 역시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
워크맨이 지고, CDP가 등장하는 시점.
EQT는 그간 쌓아 온 명성을 이어가기 위해 독창적인 컬래버레이션을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 큰 도움을 준 오버킬을 비롯, 컨셉트(Concepts), 패커슈즈(Packer Shoes), 베이트(Bait) 등이 그 움직임에 함께 했으며
당시 만들어진 컬래버레이션 스니커즈들은 기능을 쫓으면서도 독특하고 독보적인 무드를 그려냈다.
겉으로 보면 그저 색깔만 달리한 것 처럼 보이지만 그 하나하나도 사실은 허투루 된 것이 없다.
그에 대한 고뇌의 흔적은 그 아래 마련된 작업 지시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렇게 데스크탑 PC의 시대까지 돌아보고 나면,
이제부터는 새롭게 진화된 EQT의 시대를 만나게 된다.
해를 거듭하며 다양한 컬러웨이를 만난 EQT 라인업을 만들어 내고 있는 아디다스.
아디다스는 스페셜 라인을 통해 제법 강렬한 컬러웨이도 거침없이 사용한 흔적을 보여준다.
메인 라인에서는 컬러웨이 외에도 소재나 패브릭, 아웃솔의 변주까지 거침 없는 시도를 거듭하며 다양한 시리즈를 만들어 냈다.
브라운관 TV로 시작한 시대적 오브제는 이제 빔 프로젝터로 모습을 달리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 그리고 당신은 마침내 2017년의 EQT를 마주하게 된다.
EQT를 대변했던 포레스트 그린을 벗고, 시대의 흐름에 맞춰 터보 레드 컬러를 장착하고 돌아온 전혀 다른 모습의 EQT 시리즈.
프라임니트(Prime Knit)와 부스트 솔(Boost Sole)을 만난 EQT를 보고 있으니
(※ 난 사진 속 EQT Support ADV PK가 제일 예쁜 듯)
진정 '스니커즈가 진화했다'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느끼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이제야 깨닫게 된 또 한가지.
왜 이번 전시에서 녹색 빛의 형광등과 적색 빛의 형광등이 쓰였는지,
그에 대한 해답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렇다면 2017년의 EQT 라인업 중 가장 주목해야 할 모델은 무엇일까.
EQT Support ADV 91/16 그리고 EQT Support 93/17이다.
EQT Support ADV 91/16은 차세대를 위한 모던한 버전의 모델이다.
발 뒷꿈치를 감싸는 TPU 패널을 비롯,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의 혁신적 시도가 곳곳에 적용된 가장 상징적인 모델이다.
더불어 EQT Support 93/17은 겉으로도 굉장히 날렵하고 가벼워진 느낌이지만 겉으로만 달라진 것이 아니라
전면 부스트 솔, 서포팅 패널, 오소라이트 인솔 등 속에 숨은 기능적 측면까지 완벽하게 진화시킨 모델이다.
(※ 이 EQT Support 93/17도 정말 예쁘게 나왔고!)
EQT 아카이브와는 별개로 특별한 모델 몇 가지가 따로 디스플레이 되어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이 모델은 아디다스의 프리미엄 라인 중 하나인 아디다스 컨소시움(adidas Consortium)을 통해 2015년 출시되었던
오버킬과의 컬래버레이션 모델 '택시'다.
회색빛 베를린 도심을 누비는 연한 노란 빛의 택시를 절묘하게 스니커즈 위에 녹여냈다는 평을 받은 모델이기도 하다.
그 옆에는 미국의 유명 힙합 아티스트 푸샤 티(Pusha T)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세 켤레의 스니커즈가 놓여 있었다.
2014년과 2015년에 출시된 EQT Guidance는 각각 크림, 블랙 컬러를 입은 최고급 이탈리아산 가죽과 천연 잉어 비늘을 쓴 것이 특징이며,
2016년에 출시된 EQT Ultra Boost PK는 부스트 솔, 프라임니트 등
아디다스 최신의 테크널러지를 장착해 스니커즈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은 바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 된 모델은 세계 최대 아트 페어인 마이애미 아트 바젤(Miami Art Basel) 리미티드 에디션이었다.
2016년 마이애미 비치에서 열린 이 아트 페어를 통해 아디다스는 전에 없던 파격적인 프로모션으로
1,000켤레에 달하는 이 한정 모델 EQT Support ADV 91/16을 일반에게 시딩하는 퍼포먼스를 펼쳐 큰 화제를 모았다.
올 화이트 어퍼에 리플렉티브 3 스트라이프 패널을 더한 것이 특징 중 하나다.
스니커즈 전시와 함께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의 큰 축을 담당하고 있는 것은 사진 전시다.
EQT의 진화를 시대적 흐름, 포레스트 그린에서 터보 레드로의 컬러 교체 등을 통해 소개했듯
사진 역시 시대의 구분을 기준으로 큐레이팅 되었다.
먼저는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왕성한 활동을 펼쳤던 전설적인 포토그래퍼 로렌스 왓슨(Lawrence Watson)의 사진을 마주하게 된다.
80년대 초반 뉴욕의 힙합 씬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통해 존재감을 분명히 했던 작가 본인 답게
그의 사진 속에서는 아디다스 스니커즈를 신고 있던 당대의 기라성 같은 힙합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생동감있게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2017년, EQT의 귀환을 알리기 위한 선수로 등판한 인물은 바로 포토그래퍼 유르겐 텔러(Juergen Teller).
유르겐 텔러는 2017년 새롭게 선보이는 EQT를 위해 베를린 곳곳에서 청춘들의 꾸며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담아냈다.
이는 곳 앞으로를 이끌어 갈 새로운 세대를 알린다는 의도였으며 동시에 EQT의 당당한 존재감을 확인시키는 계기였다.
전시는 복층의 공간 전체를 할애하고 있었기에 윗층으로 올라가서 다른 작품들을 마저 봐야 했다.
그 통로 옆에서는 부가적인 설치 작품들이 갤러리들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큅먼트는 그저 재미를 위해 사용하는 물건이 아니라 무언가를 할 때 반드시 꼭 필요한 도구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역시, 시대적 흐름을 소개하는 데 포커스를 두었다.
"아디다스는 급변하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 그 위치를 공고히 한다"
EQT의 현재를 보여주는 좋은 설치.
이 공간은, 처음엔 뭔가 했는데 가만 보니 2017년의 동대문 DDP를 적색 빛의 형광등으로 보여주다가
그것이 녹색 빛의 형광등으로 색을 바꾸면 감쪽같이 1993년의 동대문 운동장으로 그 뷰를 바꿔주는!
처음에 설명을 듣지 못해 눈치를 못채고 있었는데 계속 서서 바라보고 있자니 형광등의 색에 따라 그 두 시대의 모습이 교차로 보이더라.
EQT의 역사적 흐름에 따라 우리의 서울도 이렇게 바뀌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장치였는데,
이걸 보니 좀 더 체감이 잘 되는 느낌이었다.
윗층에서는 EQT 자체와는 큰 관계가 없지만 역시 시대의 흐름, 역사와 아카이브라는 것에 초점을 맞춘 전시가 계속 된다.
가장 먼저는 서울을 대표하는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의 큐레이션을 통해 엄선된 90년대 힙합 음악들을 만나볼 수 있다.
벽면에 설치된 패널을 통해 음악에 대한 정보를 확인 하고
한 켠에 설치된 미니 부스를 통해 음악을 직접 들어볼 수 있게 했다.
저 부스에 들어가고 나오는 모양새가 조금 우스꽝스럽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꼭 들어가 보기를 권한다.
이 기기(?)는 처음엔 그 목적을 도통 유추할 수 없어 아리송했는데
전시장 내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음악의 이퀄라이저와 비슷한 기계 정도라는 것을 곧 확인할 수 있었다.
한쪽에 비치된 구슬을 임의로 갤러리가 두고 싶은 곳에 올려두면, 그 자리에 해당하는 악기의 소리가 강해지거나 약해지는 식으로
직접 음악 자체에 변화를 줄 수 있도록 만든 기기(?)였다.
체험형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전시장의 끝에는 이렇게 아디다스와 함께 성장해 온 힙합 뮤지션들의 얼굴을 담은 콜라주 아트웍과 함께 사진 촬영을 할 수 있는
다소 귀여운(?) 작품도 설치 되어 있었는데,
이 촬영을 마치면 한정 수량으로 제작된 <No Second Guessing> 믹스 테이프를 선물로 받을 수 있으니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다양한 미션을 수행해 보는 것도 좋겠다.
2017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모습은 영락없이 1990년대의 그것과 같다.
아쉬운 것은 집에 카세트 플레이어가 없다는 것.
놀라운 것은 사실 카세트 테이프가 아니라 USB라는 것.
전시장 초입에서 보았던 설치 미술과 같은 것의 재연.
그 속에 서 있는 나, 그리고 당신의 모습도 꼭 확인해보자.
"그 어느 것도, 속단은 금물"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월드 투어를 마치고 온 진귀한 200여족의 EQT 아카이브를 감상하고 나서야 나는 전시장을 빠져 나올 수 있었다.
2017년 아디다스 오리지널스가 EQT를 주력 아이템으로 내세운 데에는 사실 숨겨진 이유가 있다.
EQT는 본디 스포츠와 테크니컬에 집중하는 아디다스 퍼포먼스 라인 모델이다. (그래서 삼각 모양의 퍼포먼스 로고를 달고 있었다)
그런데 그 EQT가 라이프 스타일과 패션에 좀 더 가까운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라인으로 넘어오게 된 것.
소비자 입장에선 퍼포먼스가 아닌 불꽃 모양의 트레포일 로고를 입은 EQT를 만나게 된 셈이니,
좀 더 친근하게 EQT를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아디다스 오리지널스라면 퍼포먼스라인 보다는 좀 더 스타일리쉬하게 뽑아낼테니.
2017년, 아디다스 오리지널스와 EQT의 행보에 관심을 좀 더 기울여 봐야할 일이겠다.
하지만 명심하자.
그 어느 것도, 속단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