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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Issue

트롱프뢰유 : 레이크넨(Reike Nen)이 보여준 오묘한 매력


레이크넨(Reike Nen)의 2014 FW 프레젠테이션 참관을 위해 포스티드(Posted)에 들렀다.



처음 인비테이션을 받았을 때 지인들의 SNS를 통해 먼저 접했던 룩북 속 이미지가 포스티드 벽면에 크게 붙어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관능적인 느낌이 잘 담겼다고 생각해서 마음에 들었던 컷인데 이렇게 크게 보니 눈 앞에 실제하는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ㅎㅎ



레이크넨을 아는 사람은 이미 지난 2014 SS 시즌부터 남성용 모델이 출시되고 있다는 걸 알고 있겠지?

당시의 프레젠테이션에서 나는 남성용 모델 출시에 대한 소식을 포스팅의 가장 마지막에 알렸는데 이번엔 가장 먼저 소개한다.

왜냐고?

뭐 이유가 있나? 내가 남잔데? ㅋㅋ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역시 이 하이탑 모델이다. 특이한 부분이 곳곳에 포진되어 있었다.

일단 우리가 흔히 '클래식하다'는 표현을 할 때 떠올리는 브로그(Brogue)의 펀칭 형태가 굉장히 '도시적이고 미래적인 느낌'으로 재배열 되어 있었고

이런 첼시(Chelsea) 부츠 스타일의 특징인 발목 부분의 밴드도 흔적만 남겨져 있을 뿐 레더로 마감되어 있었다. (대신 안쪽에 지퍼가 들어갔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이 모델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미드솔이겠지.

지난 시즌에 이어 이번 시즌에도 홀로그램 패턴트 레더가 쓰였다. 차이가 있다면 지난 시즌보다 좀 더 웨어러블하게 얌전해졌다는 것 정도?

사진으로 보면 굉장히 튈 것 같다고 생각되겠지만 실물은 생각보다 부담이 없게 다가왔던 것 같다.



안쪽은 이렇게 생겼다. 아까 말했던 지퍼 디테일이 이렇게 자리했다.

옥스포드 슈즈 형태를 띈 로우컷 모델도 전체적으로 미니멀한 실루엣을 가지고 있어서 굉장히 탐이 났는데,



진짜 놀랄 일은 여기에 있었다.

맞다. 운동화가 나왔다.

지난 시즌 PT를 보며 여성용 슬립온이 나온 것에 "왜 남성용 슬립온은 안만들었나!"라고 농담섞인 불만을 건네기도 했었는데

레이크넨은 이번 시즌 슬립온보다 더 한 걸 내놨다. 운동화라니 세상에...

근데 더 재밌던 건 이게 모양이 뭔가 독특하다는 느낌이 자꾸 드는거지?

그래서 이유가 뭘까 했는데, 가만 보니 앞코 부분은 운동화인데 뒷쪽은 영락없는 구두다.

미드솔과 아웃솔이 그 둘을 잘 잡아주면서 "이건 운동화임요" 라고 결론을 딱 내려주긴 했는데 아무튼, 참 요망하게 생긴 녀석이 나타났다.

사실 뭐 이런 형태의 제품이 이전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과거 미하라가 이와 같은 일을 행한 적이 있긴 하다.

근데 그것보다는 좀 더 포멀하고 점잖은 느낌? 튀지도 않고 부담스럽지도 않고 오히려 무난하기까지 한 것 같아 탐이 났던 모델이다.

(개인적으로는 화이트 그레이 모델이 실물로 봤을 때 숨막히게 예뻤던 것 같다)



운동화 바람은 여성용 모델로도 이어졌다. 패턴의 절개가 좀 다르긴 했지만 여성용 운동화도 양념반 후라이드반마냥 구두의 디테일을 갖고 있었다.

단지 남성용보다는 조금 더 과감한 소재와 컬러를 썼다는 것 정도가 차이점일 수 있겠네. (이 컬러 역시 실물이 굉장히 고급스럽게 예뻤다)



지난 시즌부터 계속 내 눈에 밟히고 있는 여성용 슬립온. 이번 시즌에도 역시 내 시선을 사로잡았는데,

윙팁 디테일도 재미있었지만 저기 저 지퍼 디테일이 참 인상적이었다.

남성용 첼시 부츠 모델에서 본 것과 자리 배치와 적용 방식이 같았다. 고무 밴드 대신 지퍼를 넣었으니까.

이런 디테일의 적용은 처음 대면한 것이었는데 생각외로 잘 어울려서 그냥 처음부터 이렇게 생겼던 것 아닌가 하는 착각도 잠시 했던 것 같다.



그 외에도 다양한 여성용 구두가 프레젠테이션을 위해 진열 되어 있었다.

각각의 캐릭터가 다 달라서 재미있었는데, 역시 내가 남자라 뭐 잘 모르겠어 솔직히 ㅋㅋ

그냥 일상적으로 보던 구두가 아니었기 때문에 재미있다는 생각 뿐 ㅎ



저기 어렴풋이 보이는 아가씨가 바로 이 레이크넨을 이끌고 있는 윤홍미 디렉터.

내가 방문했던 당시 윤홍미 디렉터는 지금 사진에 보이는 이 힐을 신고 있었는데,

인사를 하면서 봤던 구두의 앞모습과 뒤로 돌았을 때 본 구두의 뒷모습이 주는 느낌이 묘하게 달라서 눈길이 더 갔다.



이건 뭐지? 라는 생각으로 허리를 확 굽혀서 들여다 봤는데 이게 좀 재밌더라.

아래쪽에 있는 게 일반적인 구두를 뭐라고 해야 되나? 3D 스캐닝을 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아래 깔린 종이 속에 찍힌 사진 처럼 프린트를 한 뒤

거기서 보여지는 구두의 디테일을 다시 입체적인 구두의 앞코에 디테일로 넣었더라고? 이런 발상은 또 어찌 했을꼬?



그 안에도 자세히 보면 홀로그램 레더가 숨어있음 ㅎ



마치 남성용 부츠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던 모델들.

진짜 딱 그랬다. 요즘 남자들이 즐겨 신는 그런 부츠의 쉐입이었다.

아웃솔의 형태나 앵클 부분을 감싸는 모양이 영락없었다.

헌데 거기에 변형된 윙팁의 디테일을 넣고 지퍼를 달아두니 또 새로운 신발을 마주하는 기분이 들더라 ㅎ



전체적으로 디테일에 티가 날듯 안날듯 변화를 준 점이 재미있었다.

절개의 방향을 꺾는다든지 밴드 대신 지퍼를 달았다든지 변형을 준 디테일을 사진으로 찍어서 새로운 디테일을 만드는 데 쓴다든지.

기존에 우리가 어디선가 봤던 것들이 레이크넨을 통해 다르게 바뀌니까 이게 참 뭐라고 해야 되나?

참신한 것 같은데 새롭진 않은 것 같고 그렇다고 진부한 건 아닌데 튀지도 않고 뭐 그런?

약간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 같은?

여보세요?



레이크넨의 2014 FW 슬로건이 트롱프뢰유(Trompe-l'œil)란다.

그들의 설명을 빌리자면 뭐 우리는 수 많은 경험을 통해 진실과 거짓을 가릴 줄 안다고 믿지만 사실 애매한 게 더 많다는 뭐 그런 뜻인데,

그 말을 되뇌이며 내가 살펴봤던 제품들의 뒤틀린 디테일들 하나하나를 떠올려보니 묘하게 재밌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본 그 디테일들이 진짜 맞는 디테일인지 아닌지 묘하게 헷갈렸던 것 같달까-

방금 내가 적었던 것 처럼 말이다. 본 것 같은데 처음 보는 것 같고 익숙한 것 같은데 낯설기도 한.

포스티드를 떠나려고 뒤를 돌아 봤을 때 눈에 들어 온 저 공간 가득히 숨어있던 또 다른 3차원의 선이 내게 준 그 소름처럼.


고생 많았어요 레이크넨! 잘 봤습니다!

(홍미 수고 많았어 남자꺼 다 맘에 든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