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과 분노

2010/Think 2010. 3. 10. 12:00


퇴원한지도 벌써 한달이 되어가는것 같다.

압박붕대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목발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지 새삼 깨달은지도 벌써 한달이 되어가는것 같다.



지난주말에 아는분의 결혼식이 있었다.

목발 짚고 가기 뭐한대다가 다리도 어느정도 나아진것 같아서 그냥 압박붕대만 하고 목발 없이 갔었는데,

내가 그 덕에 아주 고생을 하는 바람에 깊이 반성을 하고 이번주부터 다시 목발을 짚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가장 힘든게 뭐냐 물으면 역시 버스 타는 일을 꼽을수 있겠다.

퇴근시간은 그나마 양반인데 문제가 바로 출근시간이다.

집이 안양이고 회사가 압구정이라서 가장 길이 막히는 노선만 기가막히게 골라서 가야 하는 탓에 출근 시간만 1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데

버스 노선도 달랑 1개 뿐이라 버스는 언제나 초만원.

앉지 못하는건 그냥 기본이고 운이 없으면 사람이 더 탈수 없는 상태여서 정류장에 서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버스가 2~4대 연속 올때도 있다.



난 뭐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 버스를 그래도 타야만 하는 상황이고 목발을 짚고 있기 때문에 버스에 먼저 타서 좋은 자리를 선점할수도 없다.

이미 뭐 그 문제에 있어서는 체념한지 오래라 그냥 말없이 버스에 타는데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충격과 분노' 라고 쓴게 바로 이 부분에서 나온다.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내가 타는걸 보면 목발을 보고 바로 고개를 돌려버린다는 것.

처음엔 뭐 그러려니 했다. 안양에서 그 버스를 타는 사람들 중 80%는 양재까지 가는 사람들이고 그 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한번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이고 앉으면 절대 일어날수가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으니까.



그치만 이게 하루하루 지나면서 사람들의 패턴을 보고 있자니 너무 기가 막힌거다.

오른쪽 다리가 아픈거라 왼쪽 다리에 있는 힘을 다 주며 버티고 목발로는 중심을 잡으면서 서 있어야 하는데 평지에서 그렇게 서있으면 몰라도

이건 사람 꽉꽉 들어찬, 발 제대로 디딜 틈 없이, 흔들거리고 덜컹거리는 버스안에서 그러고 있어야 하니까 장난이 아닌거다.

한 5정거장만 그렇게 가도 왼쪽 다리가 부들부들 거릴 정도로 힘이 드는데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젊은 직장인들은

그런 내 모습을 한번 보고 그 다음에 목발을 보고,

그 다음에 자기 손에 들려있는 mp3나 dmb같은 휴대기기를 만지작 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해 버린다는거지.



아줌마 아저씨들도 똑같긴 한데 그래도 그 분들은 젊은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낫다. 게다가 나이까지 있으신 분들이니 죄송한 마음도 좀 있고..

아 근데 진짜 이 젊은 직장인들, 특히 여자들이 진짜 대박인거다.

어떤 여자는 노약자석에 앉은채로 내 목발을 쳐다보며 껌을 짝짝 씹으며 남자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느라 바빴고,

어떤 여자는 내 목발과 휘청거리는 나를 보면서 계속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계속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고,

어떤 여자는 나랑 눈이 마주치니까 그냥 고개 숙이고 자더라 -_-;;



생색낼맘 추호도 없었다. 나도 목발 짚고 버스 타기 싫은 마음 가득하기만 하고 괜히 앉아있는 사람들 마음 불편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근데 보자보자 하니까 너무 괘씸한거다 진짜. 어쩜 그렇게 나 몰라라 할 수가 있는지.

나한테 요즘 '버스 타기 힘들겠다' 라고 말 거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대답은 그래서 고정멘트다.



"진짜 썩었어요"


Posted by 쎈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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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퓨리매니아 2010.03.10 13:02  댓글쓰기

    아 진짜 이거 완전 내 글이잖아...진짜 난 사람들이 자리 양보해주면 미안해서 사양할려고 준비중인데

    일어나려는 하나의 액션이 전혀없음...진짜 앉지못해도 상관없는데 그냥 젊은사람들(소수) 공중도덕이

    잘못되었구나 생각들어..그래서 요즘엔 그냥 맘편히 병원갈땐 차끌고가버림

    다행이도 운전은 요즘가능해서 참다행이네 ㅜㅜ

  2. BlogIcon KOJU 2010.03.10 15:40 신고  댓글쓰기

    요새 들어 느낀건데 노약자석이란 좌석 의자는 왜 있는건가 의문이 감.

    차안에 다른승객이 많이 없을경우엔 사람도 없는데 덩그러니 앉을 자리 놔두고 왜 굳이 에너지 소비하는가..

    노약자가 없을 시엔 앉아도 되는데, 노약자가 있을땐 비켜주라고 있는 노약자석 아닌가?

    지하철 같은 경우는 주위 눈치도 있고 좀 그러려니 하는데

    버스는 솔직히 사람많고 그럴땐 좀 앉는거 이해하는데 노약자가 타면은 좀 양보 해야 하는데

    요샌 그런거 없는 듯 보임..

    더 웃긴건 할저씨 할줌마들은 사지멀쩡하고 등산복 쫙 빼입고서 금방이라도 산정상에 뛰어올라서

    한잔 거하게 들이키실 분들이 힘들다도 낑낑대는건 뭐임- _-ㅗ

  3. BlogIcon Black Jay 2010.03.10 19:59 신고  댓글쓰기

    저도 그게 참 궁금했어요..
    지하철은 부산의 경우에는 정말 할아버지,할머니 분들 아니시면
    잘 앉지도 않거나 정말 자리가 없는데 앉고싶을 때 앉는데..
    버스는 그런 구분이 없더군요..부산에서는 버스를 안 타서 모르겠지만
    서울,경기지역에서는 외대-안양 간 직행노선과 '대치동-남산'을 탔는데
    언제나 출근시간엔ㅎㄷㄷㄷㄷ그래서 1,2시간 일찍 탑니다..

  4. BlogIcon 88H 2010.03.11 01:28 신고  댓글쓰기

    시즌2가시작되었군요!
    늦었지만 퇴원하신거 축하드려요!!

    출퇴근.... 많은 고생을 하시는군요 ㅜㅜ
    제가 통학할때 타고다니는 M버스는 그나마 좌석제라 좌석이 꽉차면 더이상 안태우는 그런버스라.. 좋은데ㅜㅜ!!
    아직 뵌적은 없지만.... 자리에 앉아있을때 목발님께서 등장하시면 바로 비켜드려야겠어요! 한발로 서있다니 ㅜㅜ..

    • BlogIcon 쎈스씨 2010.03.11 10: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 어디더라 양재 꽃시장 쪽에서 가끔 M 버스 보는데

      그건 뭐에용?? 타본적도 없고 뭔지도 몰라서 '오 저건 뭥미' 하곤 했는데 ㅎㅎ

      PS - 진짜 꼭 비켜주세요;; 목발 짚는 입장 되보니까 엄청 서러워요 ㅠㅠ

  5. G.BROS 2010.03.11 16:14  댓글쓰기

    저도 대놓고 욕은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양보하는 일도 그냥 양보 안해주는 일도 있어서
    부끄럽기도 하고 욕하기도 머하지만.
    그래도 일말에 양심정돈 저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혼자 살아가는 세상도 아니고 내가 조금만 불편하면 되는건데 말이죠.

  6. NIA 2010.03.13 21:22  댓글쓰기

    힘드시겠어요 ㅠㅠㅠ

    진짜 한번 저사람들도 겪어봐야지 어휴

    저도 예전엔 목발 짚던때가 있어서 너무 공감되네요 ㅠㅠㅠ

    저는 더구나 여름때라더욱....초여름부터 여름끝날때까지.....

    ㅠㅠ빨리 나으시길 기도하겠습니다

    오랜만에 들어오니 블로그가 다시 시작했군요 !!!

    다시 돌아와서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어요 ㅋㅋㅋㅋ

    • BlogIcon 쎈스씨 2010.03.13 22:5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름 ㅠㅠ 근데 겨울도 힘든건 뭐 똑같은거 같아요.. 목발 잡는 손은 계속 찬바람 맞아야 하구.. 눈이나 비오면 뭐 ㅠㅠ

      에휴.. 빨리 목발 안쓰는 날이 와야겠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