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2010/Think

충격과 분노



퇴원한지도 벌써 한달이 되어가는것 같다.

압박붕대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목발이 얼마나 중요한 물건인지 새삼 깨달은지도 벌써 한달이 되어가는것 같다.



지난주말에 아는분의 결혼식이 있었다.

목발 짚고 가기 뭐한대다가 다리도 어느정도 나아진것 같아서 그냥 압박붕대만 하고 목발 없이 갔었는데,

내가 그 덕에 아주 고생을 하는 바람에 깊이 반성을 하고 이번주부터 다시 목발을 짚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 가장 힘든게 뭐냐 물으면 역시 버스 타는 일을 꼽을수 있겠다.

퇴근시간은 그나마 양반인데 문제가 바로 출근시간이다.

집이 안양이고 회사가 압구정이라서 가장 길이 막히는 노선만 기가막히게 골라서 가야 하는 탓에 출근 시간만 1시간 반 정도가 걸리는데

버스 노선도 달랑 1개 뿐이라 버스는 언제나 초만원.

앉지 못하는건 그냥 기본이고 운이 없으면 사람이 더 탈수 없는 상태여서 정류장에 서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버스가 2~4대 연속 올때도 있다.



난 뭐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 버스를 그래도 타야만 하는 상황이고 목발을 짚고 있기 때문에 버스에 먼저 타서 좋은 자리를 선점할수도 없다.

이미 뭐 그 문제에 있어서는 체념한지 오래라 그냥 말없이 버스에 타는데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충격과 분노' 라고 쓴게 바로 이 부분에서 나온다.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사람들이 내가 타는걸 보면 목발을 보고 바로 고개를 돌려버린다는 것.

처음엔 뭐 그러려니 했다. 안양에서 그 버스를 타는 사람들 중 80%는 양재까지 가는 사람들이고 그 거리가 상당하기 때문에

한번 엉덩이를 의자에 딱 붙이고 앉으면 절대 일어날수가 없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으니까.



그치만 이게 하루하루 지나면서 사람들의 패턴을 보고 있자니 너무 기가 막힌거다.

오른쪽 다리가 아픈거라 왼쪽 다리에 있는 힘을 다 주며 버티고 목발로는 중심을 잡으면서 서 있어야 하는데 평지에서 그렇게 서있으면 몰라도

이건 사람 꽉꽉 들어찬, 발 제대로 디딜 틈 없이, 흔들거리고 덜컹거리는 버스안에서 그러고 있어야 하니까 장난이 아닌거다.

한 5정거장만 그렇게 가도 왼쪽 다리가 부들부들 거릴 정도로 힘이 드는데 노약자석에 앉아있는 젊은 직장인들은

그런 내 모습을 한번 보고 그 다음에 목발을 보고,

그 다음에 자기 손에 들려있는 mp3나 dmb같은 휴대기기를 만지작 거리며 창밖으로 시선을 고정해 버린다는거지.



아줌마 아저씨들도 똑같긴 한데 그래도 그 분들은 젊은 사람들에 비하면 훨씬 낫다. 게다가 나이까지 있으신 분들이니 죄송한 마음도 좀 있고..

아 근데 진짜 이 젊은 직장인들, 특히 여자들이 진짜 대박인거다.

어떤 여자는 노약자석에 앉은채로 내 목발을 쳐다보며 껌을 짝짝 씹으며 남자친구와 전화통화를 하느라 바빴고,

어떤 여자는 내 목발과 휘청거리는 나를 보면서 계속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계속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고,

어떤 여자는 나랑 눈이 마주치니까 그냥 고개 숙이고 자더라 -_-;;



생색낼맘 추호도 없었다. 나도 목발 짚고 버스 타기 싫은 마음 가득하기만 하고 괜히 앉아있는 사람들 마음 불편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근데 보자보자 하니까 너무 괘씸한거다 진짜. 어쩜 그렇게 나 몰라라 할 수가 있는지.

나한테 요즘 '버스 타기 힘들겠다' 라고 말 거는 사람들에게 내가 하는 대답은 그래서 고정멘트다.



"진짜 썩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