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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Issue

헤리티지 플로스(Heritage Floss)의 새로운 시작. 내가 어떻게 봤냐구?

 

헤리티지 플로스(Heritage Floss)가 의류 브랜드가 아니라 사실은 원단 브랜드로 출발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스웻셔츠나 팬츠, 후디류가 워낙 강하게 기억되고 있는 것이 큰 이유일텐데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확하다면 그 아이템들은 헤리티지 플로스 원단의 이해를 돕기 위한 일종의 '샘플'로 만들어 진 것이다.

물론 정말 샘플로 사용되고 말았던 건 아니다. 사이즈런 전개 후 시즌을 넘어서며 판매까지 진행했으니까.

 

 

헤리티지 플로스를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휴먼트리(Humantree)를 함께 기억하고 있을 것이고

휴먼트리에서 만든 브랜드라고 알고 있는 이 또한 상당하리라 생각한다. 뭐 설명하자면 얘기가 길어질테니 각설하고 현재를 놓고 보자면

헤리티지 플로스는 현재 이윤호 디렉터가 이끌고 있는 독립 레이블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번 시즌이 그의 첫 출발이기도 했다. 휴먼트리를 떠나 새롭게 도전장을 내민 이윤호 디렉터의 결과물이라 처음부터 기대가 컸다.

친분이 두터운 사이는 아니지만 오가며 인사 나누는 사이였기에 나름의 정도 있었고

지인들의 SNS를 통해 그가 빈티지 스포츠 의류에 있어서 만큼은 굉장히 박학다식하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일단 스웻 셔츠와 팬츠, 후디는 볼 수 없었다. 그게 가장 큰 부분이었다.

안타깝게도 방문했던 시간에 이윤호 디렉터가 현장에 없어서 물어보지는 못했는데,

계절의 영향인건지 앞으로도 이렇게 전개할 건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볼 수 없었다.

(명확하게 정리하자면, 전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전의 스타일은 확실히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더 이번 시즌 컬렉션이 더욱 강하게 기억에 남게 된 것 같기도 한데-

 

 

이번 시즌의 테마가 'Last Resort'다.

굳이 스토리를 풀지 않아도 대충 "아 그런 느낌이겠구나"라고 머릿속에 무언가가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옷을 보니 더욱 그랬다. "거 왜 있잖아 그-" 처럼, 딱부러지게 설명을 시작하기 뭐한데, 굳이 설명 안해도 될 것 같은 느낌.

 

 

분명한 건 대충 만든 게 아니라는 걸 의류 제작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내가 봐도 알겠다는 것.

패턴이나 실루엣, 핏 등이 분명 옛 것에 많이 기초해 만든 것 같다는 것 정도? 

 

 

단지 옷걸이에 걸려있을 뿐인데도 이미 누군가가 입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들었고,

어떤 사람이었을지, 어느 곳에서 입고 있었을지도 어렵지 않게 그려졌다. 그게 참 재미있었다.

 

 

벨벳 소재는 특히나 놀라웠다.

이게 대체 얼마만에 보는 소재인가 ㅎ

지금 20대 초중반의 친구들은 어쩌면 생소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내 또래라면 꽤 반가웠을 +_+

 

 

같은 스웻류의 아이템이지만 역시나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

하프 집업이라든지 쉽게 접하기 어려운 스웻셔츠의 컬러(깃)라든지 하는 것들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삼십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는 내 눈에도 이건 7-8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헐리웃 영화에서나 봤던 실루엣 같았다.

심지어 타이포그래피 마저 범상치 않은 폰트로 그려냈어 ㅎ

 

 

그렇게 행거에 걸린 옷 들을 하나하나 보다가 잠깐 응?

 

 

오 이 포켓 보소 -

요즘 감히 누가 시도나 할까 싶은 ㅎ

사이클 타는 분들의 엉덩이 위에 자리한 그런 포켓만 봐왔던지라 잠시 그런 아저씨들이 떠오르긴 했는데,

이내 요트위에서 자그마한 정비를 하고 있을 어떤 사내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어디서 고증을 한 건지는 역시 모른다. 왜냐. 내가 방문했을 당시엔 정말로 이윤호 디렉터가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냥 내 마음대로 상상하며 봄.)

 

 

원단 브랜드로 출발했다는 이력 때문인지 이번 시즌에도 직조한 원단을 썼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얼핏 들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일까- 옷이 하나하나 '단단하다'는 느낌을 내게 주었던 것 같다.

단지 유행한다니까 만들고 특이하니까 되겠지- 하는 가벼운 생각 같은 걸 찾을 수가 없었다.

오히려 시장성을 노렸다면 이렇게까지 분명한 색을 가진 결과물이 나오진 않았을 것이다.

디렉터의 고집이 엿 보이는 순간이었다.

 

 

내가 말은(글은) 이렇게 풀어내고 있지만 장담컨데 이게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헤리티지 플로스는 대중을 겨냥한 브랜드가 아니다. 여유를 즐길 줄 알고 유행을 멀리할 줄 아는 멋쟁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납득할 수 있을 퀄리티로 승부수를 띄웠다.

바라고 원하든 스포츠 캐주얼의 빈티지 스타일을 이윤호 디렉터는 헤리티지 플로스로 직접 얘기하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걱정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판매'가 이루어져야 하고 '자금회전'이 되야 자신의 꿈도 계속해서 펼칠 수 있고

계속해서 만들고 싶고 보여주고 싶은 옷을 만들텐데 그게 과연 쉽게 될까 하는 그런, 조금은 냉정한 마음의 걱정.

예전 같지 않게 문화의 다양성이 패션에서도 많이 이해되는 시대다 보니 - 레트로 열풍도 계속 되고 있으니 - 냉담한 반응은 없으리라 생각하지만

이윤호 디렉터와 헤리티지 플로스도 결국은 소비자의 니즈를 충분히 고려해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스트라이프 패턴의 옥스포드 셔츠와 버캣햇은 상당히 고무적인 아이템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 월계관 자수는 컬러감이나 크기가 치밀하게 계산된 듯 하다. 안정감이 있고 고급스럽게도 보인다.

이 로고가 스트라이프셔츠, 버캣햇과 만나니 흡사 아이비리그마저 연상케 한다.

빈티지라는 단어가 - 물론 그런 뜻은 아니지만 - 낡은, 정돈되지 않은 느낌을 많이 주는데 이 컬렉션이 그 이미지를 말끔히 걷어냈다고 보여진다.

 

 

디테일은 물론 옛 스타일을 많이 담고 있다. 버캣햇의 브림 각도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지퍼가 더해지니 놀랍기까지 +_+) 

 

 

방금 봤던 셔츠는 컬러 베리에이션을 달리한 모델과 솔리드 타입까지 다양하게 제작했다.

랄프로렌의 폴로 셔츠가 당연히 함께 생각났는데 폴로 셔츠가 가지고 있는 정숙함보다는 조금 더 경쾌한 느낌이 많이 묻어나는 듯 했다.

(개인적으로 폴리백의 타이포그래피는 신의 한수가 아닐까 싶음!!)

 

 

버캣햇과 시리즈로 이어지는 캠프캡 또한 요즈음의 시장에서 보여지는 캠프캡과는 대충 봐도 핏이 다르다는 게 느껴졌다.

챙의 길이부터가 이미 비교를 불허하는 수준. 역시 옛 스타일에 기초했음이라 사료된다.

 

 

프레젠테이션이 열린 1984에 들어서면서 입구에서 보여지는 그런 '규모'를 보고 컬렉션을 아담하게 전개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보다보니 그 안에서 굉장히 다양한 시도를 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왜 '스포츠 앤 캐주얼(Sport & Casual)'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지가 이쯤 보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처음 마네킨의 머리 부분에 걸쳐있던 걸로 접했던 메쉬캡.

베테랑 캡이라고 하나 이런걸? 게릴라 라는 단어가 임팩트 있게 느껴졌다.

 

 

중앙 행거에서 코튼져지 소재의 아이템을 대거 만나봤는데,

벽면 행거에서는 셔츠류를 한 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라스트 리조트'의 대미를 장식할만한 셔츠와 버캣햇이 인상적이었다.

컬러도 컬러지만 저 패턴이 정말 +_+ (그림을 일렬로 배치하고 그를 다시 라인의 형태로 둬서 스트라이프처럼 보이게 하는 센스!)

 

 

응??

  

 

범상치 않은 컬러감을 뽑내던 페이즐리 패턴의 셔츠도 보이고 ㅎ

 

 

이건 앞서 봤던 옥스포드 셔츠들이구만.

 

 

아 이건 좀 개인적으로 아쉬운 순간이었는데,

1984의 안쪽에서 헤리티지 플로스와 별개로 산슈앤코(SanShoe&Co.)의 프레젠테이션이 함께 진행되고 있길래 기분좋게 구경하려고 다가갔다.

(산슈앤코 PT가 함께 하는 줄 모르고 갔던거라 ㅎㅎ)

 

 

근데 멋쟁이 어르신 한 분이 저기서 한 발자국도 안움직이셔서;;;;

맘 같아선 뭐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설명을 들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다음 스케쥴 때문에 오래 머무를 수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뒤에서 알짱알짱 거리다가 쓸쓸히 돌아나와야만 했다는 ㅠㅠ

후엉 ㅠㅠ

 

이야기를 아무튼 마무리 하자면, 헤리티지 플로스는 대단했다.

색이 분명했고 완성도가 단단했다. 정말 흉내내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이건 곧 놀라웠다는 긍정의 후기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분명히 염두할 수 밖에 없을

시장성에 대한 돌파구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궁금함의 후기이기도 하다.

좀 무거운 말 같다면,

 

걍 잘 봤음 ㅋ 굿굿! 내가 뭘 알겠음 ㅋㅋ

이윤호 디렉터를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게 조금 아쉽지만 뭐 또 좋은 날이 있을테니 +_+

혹시라도 내가 잘못 이해했다거나 해석한게 있거들랑 그때 만나서 풀어주길 ㅋ

 

진짜 끝!